1. 병자호란의 배경
여진족은 오늘날 만주와 연해주 근방에 머물러 살고 있었다. 그들이 세운 금나라는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한 후 통일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으며 16세기 중엽 아이신 교로 누르하치가 숙신, 말갈, 여진을 규합하여 16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들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한편 임진왜
인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으나, 이는 당시 명과 후금, 모문룡의 문제, 국내 세력 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여기서는 광해군의 몰락 원인과 대후금정책의 실패를 중심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발발에 대해 논해 보도록 하겠다.
병자호란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전쟁의 경과 그리고 관련 인물, 이 후 동북아 정세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Ⅱ. 병자호란의 배경
병자호란의 배경은 대외적인 면과 대내적인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외적인 면은 17세기 초 동북아 정세의 급격한 변
발생할 경우에 전혀 유용성이 없는 전법이었다.
국방태세에 대해서 알아보면, 당시의 국방책임자들은 일본의 침략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전에서 미리 적의 상륙을 저지하겠다는 기본적인 계책조차 갖지 못한 실정에 놓여 있었다. 조선수군의 존재이유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해
병자호란은 1636년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이다. 이것은 앞서 있었던 1627년의 정묘호란으로 조선과 후금 사이에 맺은 강화조약 불이행에 따른 복수적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이고 명분적 이유일뿐 실상은 1623에 있었던 인조반정으로 인해 발생한 조선과 후금, 명 삼국 간의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