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서둘러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도식적인 형태로 일반화시켜 버리려는 욕망에 굴복하기 쉽고, 다른 한 편으로는, 양쪽이 공유한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이나 국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려는 작업에 함몰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장사상에 입각하여 보들레르의 상상세계를 조명하고자 하는
비평을 통해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었던 것처럼 수많은 미술가들과 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색채로, 멜로디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보들레르인가?” 왜 그의 작품 세계가 상징주의, 더 나아가 20세기 현대문학의 전환점 혹은 시발점이 되고
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엘리엇은 보들레르의 작품은 "언어의 국경을 넘어서 현대시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라고 했고 특히 사르트르는 시인에 관한 엄격한 비평을 시도한 것이 역설적으로 보들레르의 존재, 다시 말해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쓴 시인의 중요성을 증명해주는 결과가 되었다.
비평은 호흡이나 다름없이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한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표현하고, 그와 같은 비평 활동을 하는 우리 자신의 정신을 비평한들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밝혀지는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어떤 시인을 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