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은 수교 교섭이 일본측의 완강한 자세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사죄와 보상 문제 등 현안을 뒤로 미루고 우선 국교부터 수립하자는 입장으로 후퇴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1973년도 중일국교정상화 당시 중국이 취한 방식과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은 경제
국교정상화)과 일본정치
1992년 11월에 수교교섭이 중단된 이후 북일간의 접촉은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일본측의 움직임으로부터 다시 교섭이 시작되게 되었는데, 북.일간의 본격적인 접촉은 베이징에서 북.일 양국 외무성 과장급 접촉이 공식적으로 제시되면서 개시되었다. 이때까지의 관계
관계에 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또한 북일관계 개선의 핵심쟁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인 납치 사건의 이해를 위해, 최초의 일본인 납북의혹 제기라 할 수 있는 ‘이은혜 문제’를 필두로 일본인 납치문제의 전개과정을 논의한다. 최종적으로 본 보고서는 이 사건이 현재 일본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과
북·일관계는 대체로 제5차원의 ‘동서대립’에 의한 긴장 또는 데탕트, 제2차원의 한국의 대북한정책 및 남북관계, 한·일관계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접근과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제5차원의 동서냉전구조에 의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국교정상화를 위한관계개선까지 발전하지 못하였다.
관계)와 북일교섭북일국교정상화에 모처럼 청신호가 켜졌다. 9.11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수상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임기 중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겠다”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의욕을 보였으며, 그 다음 주인 19일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