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모든 문화예술은 해당 시기 당면한 과제와 정책 홍보를 위한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중요시되어 왔다. 북한의 예술창작과 활동은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한 주체문예 이론에 따라 이루어지며, 항일 무장혁명 투쟁당시 김일성 주석이 창작하였거나 창작을 지도 한 작품 이른바 ‘불후의 고전적 명작
북한에서는 이를 북한음악의 뿌리라고 보고 있다.
제2기는 1945년 8월에서 1950년 6월까지이고, 평화적 건설시기의 조선음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기에는 당성•인민성•계급성이라고 하는 레닌 주의적 문예관을 정책화 하여 그것을 음악에 반영토록 하였다. 이 시기의 음악은 뚜렷한 사상적
북한의 경우 이런 이론이 무슨 소용에 닿을 수 있었던가를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없는 데, 그 해답이 앞에 보인 김일성교시이다. 社會主義的 國際主義라든가 사회주의적 愛國主義라는 원칙을 각각 내세우면서도 ’조선적인 것‘을 표나게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레닌 주의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예총은 남한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예총)이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과 비슷하나 기능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총’이나 ‘민예총’은 예술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 성격의 단체로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민간단체이다. 반면 북한의 ‘문예총’은 노동당의 정책집행 기
음악은 혁명 후 10년 동안 D. 쇼스타코비치•S. 프로코피예프에 의해 주도되었다. 발레곡•교향곡•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작곡되었으며 대중음악에서도 유명한 V. 비소츠키•A. 푸가체바 등이 활동하였다.
발레에서는 모스크바의 볼쇼이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 같은 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