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동포정책에 비교해서 남한의 정책은 수세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북한이 해외동포를 그들의 공민으로 보고있는데 반해 우리 정부의 동포정책은 동포를 `다른 나라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출발하였다. 따라서 해외동포의 거주국에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적응
역사관을 극복하여야 하는 동시에 역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혼돈 속에서 해방 후 민족분단으로 남한은 실증사학이 민족주의사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게 되었고, 북한은 사회경제학이 주도함으로써 지역적으로 분리된 채 정리되었다. 그래서 한국역사학의 발전과저을 살
경제조직자적, 문화교양자적 기능과 역할에 이바지 하게 됨.)
(여러 사회단체들과 경제, 문화기관들에서도 그 특성에 맞는 신문 널리 발행하고 지방신문도 발행 됨. )
• 잡지 발간 사업.
(잡지 발간에도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여 1946년 당의 이론잡지 근로자가 발간됨. 이밖에 정권기관
역사책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실에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초상이 걸려있었다는 이야기 또한, 어린 시절 반공·멸공의 단어를 들으며 자라 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꼭 드라마 같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다. 수학여행을 평양으로 가고, 친구를 동무라고 부르는 그들은 그러나 역시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