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권력구조를 액면 그대로 놓고 북한의 현실과 전망을 예측하려 한다면 현재와 같은 붕괴상태의 경제와 극심한 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체제가 계속 존속하고 있다. 김일성은 이전 공산국가들에서처럼 노동당 정치국이나 비서국, 당대회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같은 당의 집체적 협의
정치적 신임과 물질적 배려를 공식 서열상 최고위층의 원로들보다 더 높여줌으로써 이들 양대부서를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의 명실상부한 핵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이 김정일이 사회에 대한 당의 통제와 감독기능을 절대화시키고 당내의 민주주의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시킨 근본목적은 그 어떤 분
북한의 지역행정단위별 인민위원회는 내각은 물론 상급 인민위원회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형식상 지방을 총괄?감독하는 부서는 없다. 대신 수령?당?인민의 유기체적 삼위일체를 바탕으로 수령 유일체제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에 비추어 볼 때
북중 양측은 대사를 상호 소환하는 등 갈등의 양상을 보였으나 1970년 4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평양을 방문할 때에 다시 회복되었다. 문화혁명 기간에 중국은 국내의 정치적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원조에 한계를 보이고 있었고 경제․문화관계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북한은 남한에 무장병력을 투입한 후 제주폭동 사건을 비롯해 1948년 여수∙순천반란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고, 그 이후 1949년 유격투쟁전략을 시도했으나 이것도 무위로 끝났다. 결국, 1950년 봄까지 남한에 대한 해방과 혁명 전략의 기반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들의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