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포함하는 국가들의 지원을 뿌리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핵실험은 미국과 일본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핵보유선언 이 후 한반도 안보정세의 흐름에 대해서 고찰해보았으며, 이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해서
중국․ 소련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 일본 사이에도 새로운 관계 수립에 대한 시대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완화와 경제적 상호협력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듯 보이던 동북아는 ‘북핵문제’로 깊은 수렁에
중국은 미·소 위주의 성격에 반발하여 가맹하지 않았다. 한국은 1975년 4월 23일 정식 비준국이 되었으며, 북한은 1985년 12월 12일 가입했으나 1993년 3월 12일 탈퇴하였다.
○ 북미제네바기본합의서
1994년 10월 21일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체결한 비공개 양해록.
1992
북한을 압박하였고, 이에 북한이 핵 확산 방지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원자로의 폐연료봉을 인출하면서 제 1차 핵 위기가 발생했다.
NPT 탈퇴라는 강경한 대응은 국제사회에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NPT 탈퇴를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북∙미 고위급 회담을 통하
핵 폐기 범위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대한 용인 여부였으나, 역시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3주일 동안 휴회에 들어갔다. 9월에 열린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목의 이른바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제5차 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