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콘티, B․ 베르톨루치, 타비아니 형제의 작품들과 같이 참여적이고, 그람시의 흔적이 찍힌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오페라에 근거를 둔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비판적 영화 속에서 낭만적 이상주의의 시기와 서사적(혹은 파시스트적)이거나 퇴폐적인 수사법, 정체성의 위기의 만남과 경
1. 네오리얼리즘이 나온 배경과 시대적 상황
2차 대전 이전의 이탈리아 영화들은 1920년대부터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 사회를 국가주의 일색으로 물들이려 했고 이는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시스트 정부는 범죄와 비도적적인 것이 영
내용에도 스며들었으며 사회적 현실, 즉 전후 이탈리아에 만연한 빈곤과 실업에 그 초점은 맞춰졌다. 당연히 현실도피적인 해피엔딩이나 기존의 극의 흐름을 탈피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고 즉흥적인 영화들이 탄생되었는데 1942년 루치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이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Ⅰ. 리얼리즘 시(사실주의 시)
시가 인간의 정신작용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의 한 양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하다. 육체만의 인간을 상정할 수 없기에 정신이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겠고 그러한 정신의 작용이 예술의 한 형태로 정착된 것이 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영사기와 유사한 카메라를 만들게 되었다. 그 후 영국의 의사인 피터 마크 로제(Peter Mark Roset)는 영화가 인간의 눈에 보이는 착시 현상을 설명해냈다. 착시에서 비롯되는 잔상효과에 의해 인간이 움직이는 그림으로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