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과 내용에도 스며들었으며 사회적 현실, 즉 전후 이탈리아에 만연한 빈곤과 실업에 그 초점은 맞춰졌다. 당연히 현실도피적인 해피엔딩이나 기존의 극의 흐름을 탈피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고 즉흥적인 영화들이 탄생되었는데 1942년 루치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이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라고 볼
감독이 뤼미에르 제작사와 함께 제작한 <공원에서 산책하는 로베르토와 마르게리타>이다. 1896년 11월26일에 촬영된 이 영화는 이탈리아 왕과 여왕이 몬자 공원에서의 산책을 찍은 단편으로 아직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초기 영화의 제작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고 쉽게 접할
감독들은 구체적으로 시스템화 된 영화 제작 방식에서 이런 현상을 느끼고, 그에 반하기 위해서 제도를 벗어난 영화제작 방식을 꾀하였다. 영화 운동으로 볼 때 네오리얼리즘은 10년을 지속했다. 사실 네오리얼리즘은 분명한 사조라기 보다는 파괴된 현실을 반영한 일종의 제작환경과 태도였기에 붐
<라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후에는 코믹 물, 트릭 물, 다큐멘터리 물 등 다양한 작품들이 한꺼번에 상영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루이 뤼미에르가 좋아하는 장르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거울로서의 영화였다.
2. 조르주 멜리에스
Ⅰ. 서론
네오리얼리즘 운동에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꼽히는 세자르 자바티니는 열광적인 마르크시스트였고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는데, 이 두 사람이 공동작업을 통하여 변증법적인 종합을 이루면서 그 시대에 빼어난 작품들을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