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녀화(仕女畵)/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2. 인물화의 발전
- 춘추전국~한대(漢代 기원전206~기원후219): 감계(鑑戒)적, 정교(政敎)적 기능
- 한대 이후~ 당대(唐代 618~907) : 인물화가 회화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반면, 산수화는 위진남북조(265~581)부터 인물화나 종교화의 배경으로 그려지기
사녀화, 화조화나 묵화는 측천무후 시대에 시작되고, 성당기에는 천재화가 오도현(吳道玄)이 백묘화를 부흥시켰고, 그에 입각하여 회화의 지도이념인 사의를 제창했다. 또 오도현(吳道玄)은 당대의 대표적 화가로서 불교, 도교에 관한 것을 많이 그렸고, 이러한 필법이 오가풍(吾家風)이라 불리며 당대
사녀화, 화조화나 묵화는 측천무후 시대에 시작되고, 성당기에는 천재화가 오도현(吳道玄)이 백묘화를 부흥시켰고, 그에 입각하여 회화의 지도이념인 사의를 제창했다. 또 오도현(吳道玄)은 당대의 대표적 화가로서 불교, 도교에 관한 것을 많이 그렸고, 이러한 필법이 오가풍(吾家風)이라 불리며 당대
사녀화에 특히 뛰어났다. 궁정의 연회장면을 주요 제재로 하였고, 귀공자, 안마, 궁정의 부녀자, 궁정의 정원등을 잘 그렸으며 작품속의 여인들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풍채에 풍만하고 수려한 형상으로 모두 독특한 효과를 보여준다.
장훤은 아직 사녀도의 양식이 확립되기 전에 활약하였으므로 그의
주방(周昉)
*당 대의 회화1(618~907)
당은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형성했던 중국의 통일 왕조로서 시기적으로 (7C~9C)에 이르며 중국회화의 성숙기라 할 수 있다.
1)동서의 문화교류를 통해 불교와 도교가 발달하였고,
2)회화 개방의 시기로서 많은 화가를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3)외래사상을 독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