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향유층이 중인으로 옮겨지면서 사설시조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최두한은 17세기말부터 중·서리층에서 전문적인 歌客이 출현하여 상층문예인 시조의 향유에 참여해서 시조발전에 새 전기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능우는 사설시조를 귀족계층의 시가형식인 시조와 병행하여 서민층 속에서 上
특징은 반봉건 근대의식의 문학적 표현이다.
근대시가의 기원은 고전시가 중 사설시조와 가사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사설시조를 근대시가의 기원으로 보는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형식면에서의 자유시형과 자유율의 지향이다. 두 번째는 작품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욕
작품군이지만, 그 기원과 전승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어서 쉽게 폐기하기 어려운 부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각종 문헌 기록에서 그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2) 특징사설시조의 형식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전체에서
시조에 변형을 가해 15세기에 형성된 종속장르이다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17세기에 등장한 평민 문학의 일환으로 산문정신에 따라 평민 문학의 일환으로서 산문정신에 따라 평시조 3장의 형태를 따르면서 18세기에 크게 성행한 장르라고 보는 견해 정병욱, 「시조의 역사적 형태고」, 현대문학 46호, 1958
있으며 이 순간의 설렘과 발걸음이 ‘가기(佳氣) 총총야라’에서 확인된다. 비록 한 수밖에 전하지 않지만 정철이 연행 도중 촉발된 감회를 시조로 표출하기도 했음을 보여주고 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작품이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외국 체험 문학은 감상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