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로 생각했던 조선 민중들에게 이 시기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피부에 와 닫는 시기였다.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려던 서구 열강의 시도는 조선 민중의 단결된 의지로 일단 저지 되었으며 막연하게만 생각하였던 서구세력이 적으로서 또, 남연군의 도굴 사건을 통해 유교적 효 사상에 기반을 둔 우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로의 전락을 내포한 ‘강요된 근대체제로의 전화요구’라고 할 수 있겠다. 조일수호조규는 머지않아 조선이 개항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데 이는 일본이 이미 서양열강들과 수교를 한 상태이었기 때문이다. 82년부터 이어진 조․미, 조․영, 조․독수호통상조약이 이를
세력
조슈번과 규슈 남부지역을 지배한 도자마다이묘로써 현재의 가고시마현을 지배했던 세력
사쓰마번은 1866년 군사동맹을 맺고 막부에 대항하게 된다. 14대 장군인 이에모치가 사망하고 1867년 메이지 천황이 즉위하자 상층귀족과 손을 잡고 사쓰마번과 조슈번에게 막부타도의 밀칙을 내렸다. 그리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의 노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