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정치적 입지를 굳힌 상황이다. 최근 보여주고 있는 ‘박정희 향수’는 이제 정치적인 면을 떠나 큰 대중적 지지 기반을 얻고 있다. 1996년 말 공보처가 조사한 여론 조사 결과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김구 선생을 제치고 23.4%로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런
정치적 병리 현상을 극복할 수도 없으며,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공동체의 논리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정신적 자양분이 되어왔던 동양의 전통 사상들이 현대에 와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침체됨으로써 민족 정체성의 위기로까지 이어진 현실이 안타까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1913)의 끝에 횡서(橫書)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인가? 그 공이 세종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국어학사에서
토착향리들을 최종적으로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을 신왕조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과거제도를 통하여 이들은 중앙의 사대부층을 구성하였다. 이른바 사대부정치시대가 열린 것이다. 태종‧세종대의 정치세력은 실로 이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신권이 자꾸만 강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