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각국에도 이러한 상황은 예외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왔던 영국, 프랑스 세력의 퇴조와 함께 중동에는 점차로 미국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로 중동으로의 팽창을 시도해 왔던 소련역시 중동 지역에 관심을 보인다. 소련은 1955년 이집트와의 무기거래
정책을 정리해보면, 첫째로는 1949~60년은 상호 거부 시기로서, 중국의 소련 진영 합류로 미국은 중국의 팽창에 대한 봉쇄를, 그리고 중국은 소위 ‘미 제국주의’ 거부를 앞세워 양국간의 긴장이 계속된 시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1961~68년은 상호관계 모색기로서, 미국은 중국 정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중동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영국과 프랑스의 퇴조에 힘입어 이라크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하였으나, 종전 후 국제 정세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화 대립체제로 굳어지면서 이라크는 미국을 축으로 한 서구권 세력이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NATO’와 ‘SEATO’를 잇는 전략적 위치
정책을 견지하였다.
북한은 로동 1호가 완성되기 이전부터 로동 미사일 보다 사정거리가 긴 대포동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생산에 서두른 것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확립되자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탄생했다. 이에 국내적으로는 혁명과 내전으로 피폐된 국민 경제를 부흥시키는 과제를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착수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소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국가 및 인도 등의 국가와 국교를 맺었으며, 1950년에는 영국과도 국교를 맺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의 형제 관계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