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은 노인답지 않은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눈매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초상화의 작자는 송시열이란 한 인간이 그때까지 걸었던 고집스런 생애를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여 진다.
‘우암송시열’ 그는 조선시대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대(大)
송시열로 대표되는데, 이이의 학문을 토대로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천에 매진하였던 세대이다. 제3세대에는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외에도 많은 이들이 해당된다.
이이는 성리학자인 동시에 경세가였고, 나아가 조선후기의 서인학파의 학문적 구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이의 성리학적
정치이념의 시행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 화이론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이적에 대한 중화의 우월성을 논하는 중에도 이적이 중화로 변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예악을 갖추지 못한다면 중국이 이적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예악을 갖춘다면 이적이 중화가 될 수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