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한다면 오랑캐만도 못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중화와 이적의 차이는 예의의 유무로 결정된다고 단정하였다. 즉 화이론은 문화적 요소를 화이분별의 핵심 기준으로 이해하였고, 이에 더하여 유교문화의 정수인 예의의 강조를 통해 화이분별의 관념을 인륜질서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한국문학사’라고 표현하기를 주장한다. 또한 그것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그만의 문학사를 주창하는데, 바로 ‘우리문학사’라는 개념이다. ‘우리문학사’의 탄생은 북쪽에서 쓰는 ‘조선문학사’와 구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한민국 시대에 쓴 문학사’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저술했다. 이 작품은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본 것의 내용을 담았고,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동호문답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성리학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글이다. 17세기 당시는 사림이 득세를 해나가던 시기였으며, 두 사람의 글 모두에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
사회가 정치 수준에서 어떻게 대응하였던가라는 문제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재작년, ꡐ1894년농민전쟁ꡑ의 백주년을 기념하여 수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어 왔다.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