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족과 주변 이민족들에 대항한 고구려의 대외정복의 역사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고구려의 대외정복활동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가장 활발했고 성과도 가장 컸다. 이 시기의 두 왕이 바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대외관계와
백제를 공격하여 임진강과 한강까지 진출하였고 북으로는 후연(後燕)을 쳐서 요동(遼東)을 차지하고 숙신(肅愼)을 복속시켰음. 이어서 장수왕은 제도의 정비와 대외 외교 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으며, 장수왕 15년(427)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
·宋)와 통교하였고, 유연(柔然) 등 새외(塞外) 민족과도 통교하면서 외교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다. 427년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고조선의 문화 유산지인 평양으로 천도하여 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고 국력을 신장시켰다.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羅濟同
왕의 출현이전부터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었다. 셋째, 수로왕 출현장면 묘사는 고조선 및 고구려 계통신화 같은 천강 및 난생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가락국 지배계층의 신성 수식 관념이 한반도 북방계통 민족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수로왕이 9간과 같
왕권의 자존적 대외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인국에 대한 정토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주 정복대상에 대하여는 그러한 복속관계를 구체화하고자 하였던 점에 있다고 하겠다.
주목되는 것은 고구려에 있어 주 정복대상은 백제와 신라 및 동부여였으며, 왜와 비려 등은 부수적인 대상으로 단지 토멸의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