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하는 징표에 대한 견해 상 차이와 동방 노예소유자사회에 관한 의견 차이에 있었다.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 『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한길사, 1990, p.21.
토론자들은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노예소유자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삼국 시기의 사회경제구성에 대하여 중점적으
시대구분으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등 생산양식에 따른 인류사의 계기적 (繼起的) 단계로써 4시대구분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발전단계론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편성하려는 노력은 이미 일제 식민지 때부터 있었다. 1930년대의 백남운(白南雲)의 「조선사회경제사
시기로 구분한 점에서는 종전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조선역사가 출간된 바로 이듬해, 당시 일본에서 좌익활동에 종사하고 있던 이북만은 칼 마르크스의 소위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봉건제도의 동양적 형태라고 간주하는 입장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를 봉건제사회로 규정하는 논문을 일본의 역
북한
민족기원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민족의 기원과 관련,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한은 민족단혈성기원론이라고 불리는 주장을 내세워 왔다. 이 주장의 골자는 한민족은 외부로부터의 이민이나 혼혈에 의해 전혀 영향 받지 않았으며, 구석기시대 이래 꾸준히 자체적으로 진화해 고유한
년대 들어와서는 연구되었다. 1960년대에는 식민지시기의 사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였다. 그것이 식민지시기의 민족주의 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사학에 대한 재검토로 나타났고, 1967~1968년 한국사회경제학회 주최의 「한국사의 시대구분 문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는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