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이육사(李陸史)
본명(호) 이활 李活, 이원록, 이원삼
생몰연대 1905 ~ 1944
출생년도/출생지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출생했다.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활(活). 경북 안동(安東) 출생.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231쪽
이와 같은 그의 시 경향 중 특히 저항의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하여 종교지도자이면서 사상가로서 활약한 한용운과 일본유학중 모종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윤동주와 함께 ‘저항시인’ 또는 ‘민족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물론 시를 통해서 저항
이육사 등과 동인지 ≪자오선≫, ≪시인부락≫ 등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그의 시풍은 서구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김기림이나 이상처럼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보다는 온전하고 차분한 회화적인 이미지를 구사하였다. T.E 흄이나 E.파운드, T.S엘리어트의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또
이육사를 중심으로 그들이 전개한 시 세계를 통하여 1930년대 시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한국어의 훈련과 그 의미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는 일제의 악랄한 검열 제도와 우민화 교육정책 때문에 깊이 있는 시를 창조하지 못한다.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
그는 이 시에서 고향의 정경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것을 꿈에도 잊을 수 없다고 외쳤다. 그가 떠올린 고향의 정경들은 정겹고 낭만적이며 고독하고 초라한, 농촌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모습을 떠올리며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고향에 대한 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