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1904년 4월 4일(음력) 경북 안동 출생
1920년 예안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움
1925년 형, 아우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
1944년 1월 16일에 사망신고를 하였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이육사 사후에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유고가 정리되어『육사시집(陸史詩集)』이 서울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1968년에는 고향인 경북 안동의 낙동강 언저리에 이육사 시비(詩碑)가 세워진다. 시비에는 생전의 행적과 시 「광야(曠)野)」가 새겨져 있다. 「광야(曠)野)」는 시인이 죽은 뒤 시인의 아우가 수습한 이육사의 절명시(絶命詩)다.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가계와 남다른 행적으로 다대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의 암울한 민족사적 수난의 시대를 치열한 저항의 정신으로 맞서 싸워 나갔던 대표적 민족 시인, 그가 이육사이다. 행동하는 지성의 시
동안 실향의식에서 좋은 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2) 민족의식과 저항육사가 젊은 날 뜻을 세워 활동한 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온몸을 던져 조국광복을 위한 활동이요, 또 다른 하나는 짧았지만 詩作활동이었다.
육사는 경술국치를 당하여 선조들의 투쟁정신을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