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김영랑 시의 중요한 기틀을 이루는 것은 자연과 마음의 관계이다. 영랑의 시에 <내 마음>이라는 어휘가 유달리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지적된 사실이다. 그가 <마음>이라는 어휘에 집착한 것은 내면의 순결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랑은 자신의 마음의
Ⅰ. 시인 조병화
1. 억조, 해녀, 귀가 커서, 낙엽에 누워 산다, 주점, 인간피고
생활 서정을 폭넓게 담고 있고, 유려하고 부드러운 미감,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불협화나 고통을 시적 자아의 내면적 승화를 거쳐 드러낼 때 외로움, 그리움, 서글픔, 불확실한 기다림으로 우세함
2. 하루만
Ⅰ. 순수시인 노천명
盧天命 1912-1957 여류시인. 아명은 기선(基善)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에서 계일의 2녀 중 둘째로 출생. 1920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서우로 이주. 진명여고보를 거쳐,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 그해 <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했다.1935년 <시원(詩苑)>창간호에 시 ‘
시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생존적인 차원에서 생활어의 차원으로, 다시 예술어의 차원으로 상승해 가기 시작하였다. 많은 시인들이 민족어로서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음으로써 우리말, 우리글의 문학적 훈련이 본격화되었고, 예술어로서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한글은 8․15광복
1. 김영랑의 생애
김영랑(金永郞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아명을 채준이라 불리다가 윤식(允植)으로 개명하였다. '영랑'은 필명으로 시문학 창간호에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1909년에 강진보통학교에 입학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