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신라 말기 선종의 유행은 골품제의 모순, 지배층의 부패 등으로 쇠퇴 일로에 놓여 있던 신라 하대 사회의 붕괴를 촉진시키면서 새로운 고려왕조의 건립에 능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교학 불교의 논리를 부정하고, 초월하려 했기 때문에 화엄종이나 법상종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
(1)통일신라 전기 태종무열왕 ~ 경덕왕, 신라 중대
의 불교
1)정치이념으로서의 불교의 역할 축소
불교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불교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고, 그 대신에 개인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측면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선종을 익힌 도의가 신라 헌덕왕 때 당으로부터 귀국 하면서 우리나라에 전해지나, 아직은 왕즉불(王卽佛)의 왕권 불교인 교종의 탄압을 받아 그 세력을 펼 수가 없었다.
그 후, 선종은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이 대두하던 6두품 및 지방 호족 세력의 환영을 받는다. 이는 진골 귀족의 견제로 신라
신라불교의 특징
위로부터 불교수용
가장 두드러지게 국가적 색채를 띰
→ 신라가 삼국 가운데 가장 문화수준이 낮고 국가의 성장이 제일 늦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의 강화를 추진했기 때문
4c 이래 정복 사업을 통하여 늘어난 주민을 일원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신라기를 거치면서는 독창적인 한국의 불교 사상이 등장하여 한국 불교의 수준을 한층 높이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에 들어서는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고 탄압당하기도 하는 등 왕조의 특징에 따라 그 위치가 다르게 변하기도 했다. 이렇듯 불교는 사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