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시킨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게 되는 데 그것을 살펴보면,
첫째, 시장의 발달을 들 수 있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교환경제가 자리잡게 되고, 이것은 중세의 봉건적인 자급자족체제가 붕괴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체제의 초기자본주 의의 발달을 의미한다.
수탈하는 생산관계로 본 것이다. 17세기 후반이후 농노제 사회를 구축했던 양반-노비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면서 소농이 자립적 생산단위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일정 수준의 시장 경제하에서 소 농사회의 성숙은 차후 일제시대 농민-노동자-자본가 계층으로 분화되면서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후기의 이앙법의 보급을 가능하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건앙법을 실행하는 데에 사용된 것으로 『산림경제』에 등장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18세기 후반을 조선의 재래농구체계의 완성기라고 인식하거나, 18세기에 쟁기와 그것을 보조하는 각종의 경작도구가 분화 발달하여 조선
조선인의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하는 것 외에 철저한 과세대상지를 파악하여 지세를 더욱 많이 걷기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를 통해 거두어들인 지세는 조선의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총독부의 식민지 수탈정책 비용으로 사용되어 조선경제의 생산적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