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춘향가>
먼저 신재효는 그 전에 작자·연대 미상으로 전해지던 <춘향가>를 창자(唱者)에 따라서 남창(男唱)·여창(女唱)·동창(童唱)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남창에 의해서만 불려지던 <춘향가>가 여성들과, 또 판소리를 배우는 아동들이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길이
1. 신재효의 생애 (1812~1884 : 순조11~고종21)
판소리 6마당을 개작하고 단가ㆍ가사 등 수십 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살았던 시기는, 홍경래란(1811~1821)으로부터 갑신정변(1884)까지이다. 격변의 시대만큼이나 문제적인 문학사적 성취를 남긴 그는 지방관청의 서울 일을 대신
Ⅰ. 머리말
조선후기 전 계층에 걸쳐 인기를 얻었던 판소리는 동리 신재효에 의해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신재효는 판소리 광대들이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전문적인 소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양성한 후원자이자 전대의 판소리 사설을 다듬어 정리한 개작자로서 19세기 문학사의 주요한 인물이라
판소리사에 있어서 신재효의 비중이 큰 만큼 그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고 폭넓게 이루어졌다.
신재효의 판소리 예술활동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대별됨을 볼 수 있다. 긍정적인 평가는 ‘우리 극가문학을 완성한 큰 은인’,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하였다. 반면 부정적 평가는
Ⅰ. 서론
본래 기층 민중들의 연희였던 판소리는 18C 이후 서서히 양반 지식인층으로 침투하여 기록자를 만나게 된다. 그 기록자로 대표적인 사람은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한 신재효이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치산을 통해 광대를 후원하였다. 당시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박유전을 아꼈던 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