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연극사의 명치기 연극에 관한 설명에서 충분히 서술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본고에서는 상론하지 않는다. 다만 신파극에 대하여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본의 부재, 즉 신파극이 대본 없이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에 의존하는 ꡐ구찌다데(口立)ꡑ식의 방법으로 공연되었
개량주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 단체의 지도자들이 소시민적인 지식층이나 민족 자본가들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민족 운동의 성격 또한 그만큼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1 운동을 계기로 이러한 방법으로는 민족 해방운동이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새로운 방법과 사상이
Ⅰ. 한일지방분권(한국과 일본의 지방분권)
일본의 분권화개혁을 평가한다면, 일본의 분권화개혁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도 미완성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지방분권추진위원회의 권고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정부가 관련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중앙관료의 반대가 극심하
연극관
한국근대연극의 출발은 전통극의 계승 극복이기보다는, 서구 리얼리즘 무대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신파극이 성행하던 시기에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을 접하게 된 일군의 선구적인 연극인들은 민중계몽의 수단으로서, 서양의 소극장운동을 개념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의 리얼리즘 연
연극(自立演劇) 등이 있다. 일본의 연극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중국 및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부터 문화가 도입된 6·7세기와, 서양의 문예·연극 등이 유입된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친 중요시기에 결정적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고, 이것을 기초로 하여 일본 특유의 기풍을 개량, 육성한 독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