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과 효종 때 주전의 필요성과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한 김육을 들 수 있다. 실학이 학문적 체계를 이루게 된것은 유형원/번계에 이르러서이고,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이익/성호과 박지원/연암에 의해서이며, 실학사상은 19세기 초기 정약용/다산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Ⅰ. 서론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는 성리학을 비롯하여 의학, 과학, 산수 등 다방면에 통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은 생애를 통해 위기에 처한 조선 왕조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그 현실 개혁의 이론적 근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정약용의 학문은 오늘날 왜곡과 편견으로 점철된 조선후기 지성계를 조망하는데 찬란한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사상사에 있어 실학이라는 하나의 사조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학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이라는 학풍과 대조하면서
사상의 탐색에 몰두한 다산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활동하며 실학사상을 집대성 하였다.
다산은 경기도의 광주군 마현 마을에서, 진주목사를 역임했던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후손이었다. 그분의 소생인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는
Ⅰ. 서론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조선후기 역사적 변동기를 살면서 사회내적으로 누적된 모순을 해결하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했던 지성인이었다. 정약용의 사상은 그 시대의 산물이지만 시대를 넘어서 지속적인 가치를 발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