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북학파의 선구적 역할을 한 유수원은 우서에서 중국과 우리 나라의 문물을 비교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지나치게 농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상공업을 진흥시켜 나라 살림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또한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의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북학파의 사상가들 중에서 초정 박제가와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사상은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다. 그의 이름과 학문 및 사상이 다시금 햇빛을 보게 된 것은 겨우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저자 미상’이었던 『우서』가 그의 저작임이 밝혀지면서 일약 유수원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는 실학자 가운데서도
1.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종법 봉건제란 천자 한 명이 중국전역을 다스릴 수가 없어 자신의 혈족을 제후로 봉해서 각 지역을 다스리게 했던 체제로써 봉건제는 중국 주나라 때 시행된 것으로, 왕족과 공신들을 요충지의 제후로 봉하여 주나라 왕실을 지키는 번병(藩屛)으로 삼은 것에서 시작되었
실학, 양명학, 탈주자적 경전 해석 등 반주자학적 유학 사상이 등장
2> 백호 윤휴(白湖 尹鑴)와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의 탈주자적 경전 해석은 집권 세력인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격렬하게 비판
(2) 백호 윤휴
1> 주자의 경전 해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한나라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