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토지제도, 조세제도, 군사제도 들의 폐단을 시정하려는 경세치용학파와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 등 물질문화에 관심을 보인 이용후생학파, 민족문화에의 관심을 통해 주체적 역사 인식을 선명히 할 것을 강조한 실사구시의 학파로 이어져 내려온다.
실학사상가로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 이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민족적 성격 실학의 민족적 성격은 단적으로 화이론 부정에서 나타났다. 이익은 각민족 각국가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한국문화의 독립성을 강조하였고 다산은 다른 실학자보다 더 강력하게 화와 이의 종족적 지역적 구별을 부정하여 우리 민족문화의 독립성 내지 우수
사상으로서 실학이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실학은 역사의 변천과 사회의 실정을 정당하게 파악하여 민족의 각성, 자아의 재수립을 학문의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학자들은 자아의 자각으로 민족주의 정신을 제시하는데 노력하였으며, 교육·정치·경제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과학 사상과 실용학에 힘
사상가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황의 교육사상은 성리학적 교육철학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기 않으면서 그것을 더욱 정교화하고 심화시킨 결과인 것이다.
※ 조선 성리학의 두 가지 입장
학파
지역
특징
선구자
대표자
후계자
주리파
(도덕적원리)
영남학파
도덕주의, 정신주
/구암과 효종 때 주전의 필요성과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한 김육을 들 수 있다. 실학이 학문적 체계를 이루게 된것은 유형원/번계에 이르러서이고,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이익/성호과 박지원/연암에 의해서이며, 실학사상은 19세기 초기 정약용/다산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