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처럼 아테네에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그는 학생들과 거닐면서 토론하고 탐구하며 가르쳤기에,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을 소요학파(Peripatetiker)라고 불렀다.
343-342년에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요청에 따라 당시 13세 된 왕세자 알렉산더의 교육을 맡았다.
것이다. 실천적 이성과는 달리 이론적 이성은 지식 자체를 위해 탐구하고 진리를 인식하는 활동을 담당하며 이 활동이 최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지적인 덕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며 그것은 인간의 모든 능력의 조화로운 기능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질료와 형상
그는 플라톤의 이상 속의 이데아를 현실 속의 형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질료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했다. 여기서 질료와 형상은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실재이다.
2. 4원인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이 사람은 사물을 설명하
따라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플롯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심리학적 지식에 대해 해박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시인에게는 어떠한 철학적 파악 능력도 결여되어 있고, 또 이들은 무지한 다수를 즐겁게 해주고 그들의 동의를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참된 의견마저도
죽은 후에도 후세 사람들에게 그에 대하여 증언하고 사색하도록 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죽어간 그것 때문에 그를 영원히 위대한 철학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전, 자연철학자의 사상은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