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명성황후의 인품
명성황후의 생전의 인품에 대해서는 그녀의 사후를 기록한 행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아름답고 총명하였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영숙, “서양인의 견문기를 통해 본 명성황후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1864년 고종12세로 즉위/ 대원군 이하응의 섭정
1866년 철종의 3년 상이 끝났고 고종의 친정논의
1867년 민자영, 왕비로 간택
(고종의 나이 15세, 민자영이 16세)
간택배경
안동 김씨 일족의 세도정치 타도
왕권을 강화
외척의 세도정치를 원천 봉쇄
한미한 집안의 고아 소녀
1863년 고종(高宗)
그 존재 자체를 여성사적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존의 연구동향과 무녀의 명칭과 개념 정리를 하고, 본론에서는 신화 속의 여성, 무녀의 역할, 역사적 지위 변화, 무녀의 일반적 생활상, 민중 속의 무녀,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왕실과 무녀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여성사가 "여성 인물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성에게 역사에 발 딛을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한 여성은 "역사적인,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특별한 개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성을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남성들만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을 훨씬 용이하게
조선후기 천주교의 수용
- 조선후기 양반家 여성들의 천주교 수용과 여성관 -
Ⅰ. 머리말
천주교(天主敎) 맨 처음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로만 가톨릭이었다. 교의 전파에 목적을 둔 파란 눈에 노란 털 선교사들이 성경을 들고 건너와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소리쳤고,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