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한 두 오빠 나홍석, 나경석과 아버지 나기정(한일합방 전후에 용인과 시흥 군수를 지낸 개명 관료)의 권유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여자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미술학교 2학년을 마친 뒤 귀향했을 때, 아버지가 명문가의 아들과 결혼할 것을 강요하여 학비도 주지 않자, 이미 남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봉건적 규범에 해당한다. 일본 유학 시절, 20대 초반의 패기에 넘치는 나혜석은 여성도 사람이라는 자각, 그 자각을 실천해야 될 책임과 의무, 그 실천에 뒤따를 모험과 실패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힘찬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 여성들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여성 해방운동 쪽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 서양학부에서 그림공부를 했고, 글도 써 나갔다.
나혜석은 『廢墟』의 동인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소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女子界』 2호(1918. 3)이다.
여성미술가 막스 길의 전람회가 열린다. 한국적 풍물을 소재로 삼아 그린 작품들을 내보인 막스 길은 1915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중 1920년 스케치 여행을 떠나온 런던 미술학교 화가였다. 9월에는 장곡천정 은행집회소에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의 작품전이 열린다. 키스는 1919년 31민족
Ⅰ. 서 론
요즘은 여권신장이 되 많은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어 왔지만 과거에 여성은 항상 남성을 존중하고 받들고 살며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발설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삶을 요구받았다. 삼종지도라 하여 태어나서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서 남편 따르고 늙어서 아들을 따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