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6월 서울에서 일어난 임오군란(임오군란)은 1876년의 개항, 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 등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동안의 연구가 임오군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사 부분에만 치중되어
임오군란(壬午軍亂) 발생.
1884년 (고종 21)년 10.7 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시작.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1896년 (고종 33) 각지에서 을미의병(乙未義兵) 봉기.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발생.
1871년 (고종 8)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발생.
1875년 (고종 12)년 운요호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여러 사건들의 계기가 되었으며 독립협회가 결성되고 고종의 황제즉위 및 대한제국의 성립 등 혼란과 격변이 연속되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체제 전반의 변화와 그 전개로 인해 큰 혼란기를 거치게 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대하여
1860년대 두 차례 양요를 통한 서양과의 만남으로부터 1910년 한일병합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한반도는 수많은 대내외 차원의 사건들에 직면한다. 대표적으로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갑오개혁, 러일전쟁, 을사조약, 한일합방 등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
2. 명성황후의 인품
명성황후의 생전의 인품에 대해서는 그녀의 사후를 기록한 행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아름답고 총명하였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영숙, “서양인의 견문기를 통해 본 명성황후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