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사 부분에만 치중되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임오군란은 갑신정변, 을미사변과 함께 19세기말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하나이면서 후자의 두 사건과 연계된 최초의 사건으로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이에 본 조는 과연 이러한 기존의 일반적인 통념과 이미지가 맞는 것인지 또한 그들의 권력 싸움이 조선 시대 몰락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분명히 주었을 것이란 생각에 이들의 대립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임오군란’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흥선대원군이 손을 잡고 고종을 왕위에 올린다. 흥선대원군 집권기 때 삼정의 문란이 부분적으로 해소되고 국가가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였으나, 고종이 친정이 시작된 이후 민씨척족이 요직을 차지하며 다시 나라는 혼란이 거듭되었다.
본론에서는 고종 친정 이후 발생한 사태인 임오군란의 역사적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1820년 영조의 고손자인 남연군 이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운 이하응은 1843년(헌종9) 흥선군에 봉해졌다. 이하응은 왕족이었지만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하게 지냈다. 그 당시 똑똑한 왕족을 죽이기까지 하는 안동 김씨들의 권세로부터 살아남기
Ⅱ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이름 이하응(李昰應). 자 시백(時伯). 호 석파(石坡). 시호 헌의(獻懿).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1843년(헌종 9)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천장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