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1890년대 후반기에 있어서의 개화운동의 특징은 종래의 혁신적인 소수파에 의한 위로부터의 부르주아적 개혁운동이라는 제약을 넘어서 독립신문 및 독립협회에 의한 계몽운동을 통하여 개화사상이 대중 속으로 점차 침투하였고 개화운동이 이 같은 대중적 지반을 토대로 하여 만민공동회에
열린 최초의 근대적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는 민중들의 힘으로 러시아의 이권 침탈을 저지하는가 하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의회가 설립되기 직전까지 이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였고 때로는 양자의 논의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역사상 최초로 군민이 직접 체결한 계약
만민공동회의 전개 과정
◇ 제1차 만민공동회(1898.3)
- 러시아의 절영도 저탄소 조차를 반대ㆍ규탄하고,
군사교관과 재정 고문의 철수 및 노한은행의 철거를 요구
- 대성공을 거두자 많은 시민들이 독립협회에 가입
◇ 제2차 만민공동회(1898.10)
-
독립 국가 형성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지향하며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많은 변화와 더불어 개화기를 통해 교육시스템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 글을 통하여 어떠한 학문이 조선시대의 유교를 대체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교육 근대화의 진행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
발표
<독립신문>사장으로 취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 대통령대리를 겸직.
임정의 제2대 대통령으로 선임
1925년 11월 1일 , 향년 67세로 서거
의의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서술
민족주의 사관이 깊이 반영된 역사책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적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