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민주연대
강한 민족주의는 결국 배타적 “우리”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자국민의 번영과 자주만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논리의 역상에 불과하다. 국가간의 분쟁이 있을 때마다 제국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는 지배와 저항적 충돌을 정당화해 온 기제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과 비판적 지식인의 탄압 등으로 민중파 지식인의 유대감이 신장되었다. 당시 민중이 처한 현실이 독 보편적 현실이라는 인식이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 광범위 하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특히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1970)과 광주 대지진 사건(1971)은 학생 ․ 지식인 ․ 종
노동자의 당위적 위치를 찾으려는 투쟁을 촉발하였으며 자주적 조직을 지향해 전국노협이 태동하였다.
1.1.2. 4·19 민주혁명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4·19 민주 혁명이 나타난다. 4월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였으며 총체적인 한국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이다. 학생들은 4
민주주의의 실현 그 이상의 것이고 또 그것과 다른 것이다. 4월혁명은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족해방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민중혁명, 학생에 의한 대리혁명”이었다. 민중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는 이 시기의 교원노조, 은행노조,
연대를 통하여 타파하고자 했던 민중운동이다.(중략) 광주항쟁은 해방 이후 전개되어 온 우리 운동의 여러 목표들을 결합하고 투쟁의 과정속에서 확립하였으며, 민족. 민주. 민중이라는 성격을 우리 운동의 방향으로 규정해 준다.(전국민주학생연합, 「광주민중항쟁의 현대사적 재조명」,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