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파(北學派 : 이용후생학파)였다. 이익으로부터 비롯되어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성호학파는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주자학 비판의 유력한 무기로 삼는 등 비교적 경학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북학파는 홍대용과 박지원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들은 대체로 이기론과 경학적 전통으로부터
연암박지원은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에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작자의 개성에 따라 논술, 의론을 덧붙여 기의 특성을 다양하게 하여 변화된 요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이것은 특히 연암의 작품 중 <일야구도하기>, <환회기> 등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또한 <앙엽기> 역시 20여개의 명소를 역람한 기록
연암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연암은 자연의 움직임과 변화, 생동감을 잘 파악하고 이를 글쓰기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연암은 사람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한다. ‘기’를 부여받고 태어나서 삶의 의지를 지
Ⅰ. 연암박지원의 생애
북학파의 거성인 연암박지원(1737-1805)을 새삼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일찍이 우암 송시열 일계의 고루한 학자들이 존명사상에 얽혀서 아무런 실천이 없는 유명무실한 북벌책을 부르짖음에 반하여 북학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또 중국의 산천, 풍토와 문물, 제도에 대
북학파의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오랑캐족[胡族]이 중국을 빼앗았다는 것만을 알 지, 빼앗긴 것이 곧 중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서, "진실로 백성에게 이로우면 그 법이 비록 이적(夷狄)한테서 나왔다 하더라도 聖人이 장차 취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박지원 역시 "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