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문제재기에서 출발하여 18세기라는 1세기 동안의 정치사의 중심인 蕩平策(탕평책)에 대하여 그것의 본질과 성격 등을 규명하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18세기 정치사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영조 즉위 후 탕평책의 모습에서 丁未換局(정미환국) 전까지의 탕평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영조의 탕평은 완론 탕평으로 외척의 성장을 촉진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조는 즉위와 동시에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탕평이란 원칙에 국한될 뿐, 그 방법까지 계승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에 대해 시비 ․ 의리가 분
제 1 절 노ž소론의 갈등과 괘서사건
1. 탕평책의 추진과 노ž소의 갈등
이 단원에서는 영조가 탕평책을 추진하게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이를 숙지하여 당시 정국의 흐름을 읽음으로서, 영조대의 괘서사건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사전적 의미]
조선 후기 영조(英祖)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책
1. 탕평책의 개념
▷탕평이란?
[서경(書經)] “홍범주구” 편의 황극에 ‘편이 없고 당이 없어 왕도는 탕탕하며, 당이 없고 편이 없어 왕도는 평평하다(無偏無黨 王道蕩蕩
탕평책에 대하여 그것의 본질과 성격 등을 규명하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18세기 정치사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Ⅱ. 붕당정치의 과정
(별도로 첨부된 붕당의 계보와 같이 봐주세요^-^)
붕당의 효시라 할 동인과 서인의 분열은 김효원과 심의겸의 이조전랑 자리를 놓고 벌인 대결에서부터 시작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