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는 <돌로레스의 함성>(El grito de Dolores, 1908)이란 역사극이었다. 다큐멘터리, 역사 재구성물, 당면한 사회적 이슈가 1920년까지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제작물들이 워낙 산발적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영화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멕시코 정부는 혁명 기간 중에 영화를 좋은 선
년대 말 이후 이러한 운동은 쇠퇴하고 미국의 영화가 침투되어 그들이 영화관의 대부분을 채우게 되었지만, 우리는 시네마노보 운동이 몰락하고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암흑기를 맞았던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작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인종적 혼혈과 문화
영화의 맥은 단절되었는데 페르난도 비리는 홀로 아르헨티나의 참담한 현실과 대안적 방법론을 제시하며 현재까지 그들의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탱고, 가르델의 망명, 1985 『남쪽』1988, 『여행』1992, 『사회적 학살』2004
*브라질 - 시네마 노보(Cinema Novo)
1950년대 중반부터
영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남미의 영화가 하나의 운동적 이념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남미 영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운동이 탄생되었는지 남미 영화의 초기부터 시작해 알아보려고 한다. 중점적으로 남미영화운동의 절정인 1960~70년 브라질, 쿠바, 아르헨티나를 살펴
산업으로서의 규모를 형성해 갔고 극장수익이 산업 내에서 순환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사들이다. 할리우드 메이저들은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모듈 화하여 영화의 대량생산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1920-40년대 수직적 통합네트워크를 통한 할리우드 메이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