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이전의 파시즘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지니는) 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이 파시즘은 개인들에 있어서도 내면화되어 다름을 특히 문화적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새 파시즘의 형태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발전모델에 대한 순응적인 Omologation이며 따라야 할 유일한 인간형으로 소시민이 등
된다. 이후 베르톨루치는 피졸리니의[아카토네]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1962년 [불굴의 농부]를 감독하면 영화예술의 길에 들어섰다.
그 당시의 베르톨루치는 좌파였으며,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 그가 '64년’에 만든 <혁명전야>는 말만 늘어놓고 행동하지 않는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영화로 포착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그것은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고요하게 시대와 존재를 아우른다.
그가 그러한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성장과 행보에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그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공산당의 핵심 세력 중 한 명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까닭이다. 베르톨루치는 그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적는 것' 이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지만(물론 지금 이전의 생각이다), 아직은 애매한 이 영화의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생각하려 한다. 영화 외적인 부분에 얼마의 지면을 할애할 예정이며, 그 첫번째 수순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enardo Bertolucci)' 감독을 이야기 하고 싶다
#1. <인톨러런스 Intorelance>(1916) / 감독: D.W. 그리피스
왜 D.W. 그리피스인가?
우리는 이 시리즈가 왜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피스로부터 시작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영화 <국가의 탄생>(1915)은 미국의 지배적 신화를 국
가의 탄생에 관한 것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