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가 철학적으로 공자사상의 중심이 되며, 인은 예를 논급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예의 개념에 기본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논어」의 중심개념을 인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하여 적어도 인과 예는 그 중요성에서 동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공자는 나이 15세가 되면서 학문에 뜻을 두고 예(禮)를 배웠으며, 20세가 되어서는 관직에 나아갔다. 그러나 당시 노나라는 소공(昭公)이 겨우 19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정권은 모두 삼환(三桓)(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의 수중에 장악되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위한 일방적 규범이라는 오해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공자의 예치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는 봉건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 ․피지배계급의 공통된 가치인식에 그 전제를 두고 있는 만큼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백성을 정치제도나 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써 그들을 질서정연하게 하면 백성들은 형벌을 피하려고만 할 뿐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게 된다. 백성을 도덕[德]으로 인도하고 예의제도[禮]로써 질서정연하게 하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질 뿐만
주의 솔선수범과 그러한 군주에 대한 백성의 자발적 복종에 기반 하여 이루어지는 정치.
예치 : 예(禮)로써 백성들의 욕망의 한계를 설정하여 각자의 본분을 지키고 겸양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정치.
덕(德)과 예(禮)로써 질서정연하게 하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하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