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시대 周末社會는 권력정치적 성격을 갖는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을 소유한 者들간에 투쟁의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통합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혼란의 연속 이였으며 국가나 만족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간에 일체감도 없었다. 공자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예라는 보편적 행위규
들어가며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정치라는 단어만 들어도 혐오감과 함께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 정치라는 단어가 창의적이고 가치있는 단어라는 느낌보다도 파당적이고 투쟁적인 단어라는 느낌을 줄 만큼 현실 정치의 모습은 참으로 암담하다. 정치의 본질이 지배-복종 내지는 투쟁으로 변해
있고 노자와의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문장이 많이 실려 있어서 노자는 언제나『열자』전체사상의 대변자로서 위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된다.『열자』전체적인 문헌적 검토에서는 동진말(東晋末, A.D. 5세기 초)에 나타난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양계초,『선진정치사상사』, 1962, 대만, P.110.
공자의 덕치 사상에서도 왕도의 내용을 보여준다.
그 후 왕도사상은 맹자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한대(漢代)이후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면서 왕도사상은 유교정치이념의 기본내용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각 시대 유교의 세계관의 차이에 따라 왕도정치에 대한 설명은 서로 달랐다.
2. 정치학적 접근
가. 유학의 시발(始發)
사람답게 사는 길을 구현하는 것을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의 이념을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년 동안 한·중·일등 동양 사상을 지배해왔다. 유학의 개창은 공자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