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반발이라는 사회적 요인과, 17세기 이후 전래된 양명학, 서학, 고증학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라는 학문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김정희와 연관이 깊은 고증학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고증학은 경전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경전의 본 뜻을 밝히는 학문으로 청대에 일어난 학풍이다. 이
연구하여 자신의 독특한 필체인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그가 이룩한 독특한 서체는 그의 학문적인 깊이와 함께 오랜 유배 생활의 고독과 연관지어 해석되기도 한다. 서예를 바탕으로 그림에서 또한 이른바 남종 문인화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는 특유의 개성과 천재성이 번득인다.
연구하여 자신의 독특한 필체인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그가 이룩한 독특한 서체는 그의 학문적인 깊이와 함께 오랜 유배 생활의 고독과 연관지어 해석되기도 한다. 서예를 바탕으로 그림에서 또한 이른바 남종 문인화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는 특유의 개성과 천재성이 번득인다.
사상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 경향으로 재래의 화보를 본받아 그리던 산수에서 벗어나 직접 사생을 통하여 실경을 그린 실경산수의 일종이다. 진경산수화풍은 종래에 중국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무조건 베낀다거나 관념적으로 산수를 그리던 풍조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➆ 김정희파 화
개념이 내포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사실상 그것을 역사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라고 하는 사회적 모순이 격발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러한 사회모순을 개혁하려는 진보적 사상으로서의 실학사상을 개념화하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