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역사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삼국사기』「신라본기」이사부(異斯夫)조에는 울릉도가 우산국(于山國)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한다. 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그곳에 사는 미련하고 사나운 사람들에게 나무로 사자 형상의
우산국(울릉도, 독도)이 신라에 병합되어 한국의 고유영토가 됨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1145년)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열전] 이사부조 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울릉도가 독립적으로 우산국(于山國)이라는 고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기사를 비교 열람하면 국명으로는 우산, 도명으로는 울릉이라고 불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우산국과 울릉도는 동일한 땅이였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가와카미의 주장과는 달리 또 다른 일본인 학자는 독도가 울릉도보다도 먼 바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독도의 연대를 간단하게 살펴본 후, 붉어지는 독도문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후 일본의 전반적인 독도정책과 그 정책이 가진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독도와 울릉도의 관계를 뚜렷이 밝힌 세계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되며 세종 14 년(1432년)에 편찬된 신선입도지리지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머리에 밝히고 있다.
1693년
자산도로 호칭.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