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독도분쟁]독도의 역사적 증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독도(獨島)에 대하여
2.독도의 가치
3.독도가 우리땅 이라는 역사적 증거
4.독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
본문내용
독도 근해는 청정수역 이며 관광 및 해저 지하자원 개발 등 가치가 크다
독도 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통신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우산국(울릉도, 독도)이 신라에 병합되어 한국의 고유영토가 됨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1145년)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열전] 이사부조 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울릉도가 독립적으로 우산국(于山國)이라는 고대부족읍락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다. 여러문헌 의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우산국 사람들은 그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우산국 사람들은 본토에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 왔는데, 신라의 이사부 (異斯夫)가 하슬라주 (何瑟羅州 : 溟州)의 군주(軍主)로 있으면서 우산국을 신라에 귀속시켰다.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
사진자료 및 정보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다. 그 가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내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고, 이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