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고종 13(1876)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에
맺어진 12개항목의 조약. [일본의 강압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임.]
병자수호조규, 병자수호조약.
저희 조에서 발표할 내용은 개화기 이후의 한국인의 의식주 문화에 대한 내용 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개화기 이후 외국
운요호(雲揚號)사건을 일으킨 일본은 이듬해 1월 군함을 이끌고 무력시위를 벌이며 개항을 요구하였다.
모두 12조로 이루어진 이 조약은 20개월 안에 부산과 그 밖의 두 항구를 개항하며, 일본은 수시로 조선의 해안을 측량할 수 있도록 하고, 개항장에는 일본인의 조차지를 설정하며, 그들의 치외법권
정계에서 강력하게 대두된 한국에 대한 공략론.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 하여 일본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책이나 성장의 방법으로 전쟁이 논의되기 시작.
정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주도한 정권이 1875년 운요호[雲揚號]를 보내 강화도를 침공하여 강압적으로 강화도조약을 체결.
1. 명성 황후(明成皇后/1851 - 1895)의 생애
조선 고종의 비, 16세 때 대원군의 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의 비가 되었다. 대원군이 역대의 세도 정치를 근절할 목적으로 가문이 외롭고 단출한 민씨 집안에서 왕비를 택하였 으나, 1873년에 왕자 척(拓)을 낳은 후 명성황후의 친족이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대
Ⅰ. 들어가며
2007년 교육인적자원부는 사회과 중등 교육과정 개정에서 ‘동아시아사’를 신설했다. ‘동아시아사’ 과목은 기존의 국사, 세계사 등에 포함된 동아시아사를 떼어내 한층 심도 있게 다루는 것으로, 2012년부터 고교 2, 3학년의 선택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