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리 풍물놀이ꡑ를 발표했다. 그 해 4월에 같은 곳에서 장구 김덕수, 쇠 김용배, 북 최종석, 징 최종실(현 한민족예술단 단장)이 ꡐ영남 12차농악ꡑ을 발표하고, 5월에는 최종석이 이광수(현 민족음악원장)로 교체된 뒤 이들은 계속 연구하여 풍물굿에 뿌리를 둔 사물놀이라는 영역을 개발하
농악ꡑ은 일제침략기에 침략자들이 그들의 탈놀이인 能樂(노가꾸)의 발음을 본 떠 만들어 낸 말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농악을 본떠 쓰는 Farmer`s Band Music은 얼마나 기막힌 말인가, 풍물을 영어로 표기할 때는 마치 김치를 ꡐKimchi`로 쓰는 것처럼ꡐPoongmul` 또는 ꡑPoongmul Gut`으로 쓰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두들소리`의 모습과 방식 또한 `마을풍물굿`과 `무굿` 그리고 `전문연희패` 등의 그것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마을풍물굿`은 우리가 흔히 농악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서 앞서 말한 굿의 전통이 가장 잘 살아서 있는 형태로 최근까
서 론
‘사물놀이’는 1978년 2월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창단을 한 놀이패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제는 놀이패에 그치지 않고, 네게의 타악기인 꽹과리, 장고, 북, 징으로 연주하는 풍물굿을 가리켜 사물놀이라 일컬음으로써 예술 갈래를 지칭하는 말로 변모되었다.
사물놀이가 예술갈래 또는 국악갈
웃다리풍물[경기.충청]가락`을 발표했고 그날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보여준 진기하고도 신명나는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갖지 않은 채 가진 이날의 공연은 사물놀이 탄생의 서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첫 공연 2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사물놀이의 성립을 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