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사상적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 바로 유교사상이다. 유교(儒敎)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히고, 인간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행복이 넘치는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유교의 진리는 공자(孔子)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는 인(仁)
조선후기의 사상계 일각에서는 기존의 양반 사회의 모순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서 실학이 나타났다. 조선후기에 나타난 실학사상은 전통적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일련의 사상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실학사상이 목적인 새로운 사회로의 희망은 절대로 유교적인 이념에서 벗어나
양성된 유학자들 사이의 사상적 분열이 심화되는 가운데, 비유교적이며 비성리학적인 경향을 띄는 방향에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이 세조대에 도모되었다.
15세기 말 성종대에는 세종대 이래의 유교적인 의례제도 정비가 마무리되었다. 유교정치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인 체계가 『
그것을 채택케 됨으로써, 성리학의 본격적인 도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뒤이어 이제현, 이숭인, 이색, 정몽주, 길재 및 정도전과 권근 등 고려말 향리 출신의 학자들이 성리학을 계속 익히고 그것을 당시 통치술의 학문적·사상적 배경으로 삼으면서, 성리학은 명실공히 수용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Ⅰ. 서론
성리학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이것이 중국 宋에서 발흥할 무렵, 즉 고려 仁宗(인종)대를 전후한 시기(11~12세기)부터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당시 고려에서는 송의 서적을 빈번하게 수집해 들였고, 외교경로를 통해서 윤언이와 같은 대학자가 송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