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전문 졸업 후 일본 유학 결정, 히라누마(平沼)로 창씨개명 신청하기 1개월 전 고국에 서의 마지막 작품 <참회록>을 씀
- 1943년(27세) 7월 14일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 1944년(28세) 윤동주, 송몽규 징역 2년 언도,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
윤동주와 송몽규, 교토지방 재판소에
명동소학교시절의 윤동주는 학교에서 발간하는 벽보 신문에 동시를 빠짐없이 발표했다고 한다. 명동소학교 5년 과정을 수료하고 중국인 소학교 6년 과정에 편입하여 1년간 더 수업하였고 다음 해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달라진 무대에서 동주는 순수한 뜻을 펴갔다. 먼저 급우들과 함께
명동소학교시절의 윤동주는 학교에서 발간하는 벽보 신문에 동시를 빠짐없이 발표했다고 한다. 명동소학교 5년 과정을 수료하고 중국인 소학교 6년 과정에 편입하여 1년간 더 수업하였고 다음 해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달라진 무대에서 동주는 순수한 뜻을 펴갔다. 먼저 급우들과 함께
시절은 윤동주에게 문학에 대한 열정이 한껏 고조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초 한 대>· <삶과 죽음>·<내일은 없다>·<거리에서> 등 그의 초기 시들이 지어졌으며, 숭실중학교 학생회가 간행한 교지 《숭실 활천》에 <공상>이 게재됨으로써 그의 시는 최초로 활자화되었다.
1937년 윤동주는 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