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는 보길도 부용동과 새로 발견한 해남의 금쇄동을 오가며 자연에 묻혀 지냈다. 이때 금쇄동에서 소박한 산중생활과 한가한 정서를 읊은 것이“산중신곡”, “속 산중신곡“들이었고,65세(효종2,1651)에 보길도의 춘하추동을 배경으로 지은 것이 ”어부사시사“이다. 금쇄동과 보길도 부용동은 윤
보길도, 다산 초당, 영랑 생가... 특히 해남 보길도. 땅끝마을에서 노화도를 거쳐 한 점 섬으로 바다에 떠 있는 유토피아. 그리고 그 지상낙원을 건설한 고산윤선도. 보길도는 이번 답사에서 우리가 지적 유희를 즐길 곳이며, 고산은 우리에게 지적 유희를 제공해줄 인물이다.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고산은 다시 뱃머리를 돌려 해남으로 향했으나,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淸)에 항복하면서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영영 등지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로 배를 돌린다. 도중에 고산은 보길도를 발견한다. 보길도의 수려한 자연 풍광에 매료된 고산은 이곳을 은거지로
고산윤선도의 시조는 기교면에서 탁월하고, 특히 <어부사시사>는 시적 구성이 유기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시는 즉흥이라기보다는 주로 작흥에 의한 제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의 시조를 흔히 생활과 밀착되었느니, 또는 일상적이고 평범함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