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로는 첫째, 고산은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그밖에 도·불·노장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수용하였다. 둘째로 고산은 작품을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문학관을 확고하게 지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의 문학관은 경학일위·시문이위의 도본문말론에 입각했으
고산은 이곳을 은거지로 삼고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보길도의 산간 지역에 위치한 부용동(芙蓉洞)은 그 산세가 연꽃처럼 포개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비롯하여「산중신곡(山中新曲)」,「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등과 같은 고산의 대표적인 작품이 모두 보길
고산 문학의 정수’ 이며 ‘조선 시가의 백미’로 평가 되고 있다. 정진완,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연구」,(충북대학교 석사학위 논문,1995), p.1
고산윤선도의 문학이 우리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에 그 연구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 왔는데, 본 레포트에서는 <어부사시사>에 드
윤선도는 이이첨, 박승종, 유희분 등은 당시 집권세력의 좌상을 격렬히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이것이 유명한 병진소임이다).그로부터 1년 뒤에는 경상남도 기장으로 이배되었고, 인조반정(1623)이 일어나 이이첨 일파가 처형되기까지 8년 동
, 문수동, 낙서재, 세연정 등 온갖 정자와 서재를 만들...
3. 고산의 작품들
지금까지 전하는 윤선도의 국문시가로는 75수가 있다. 그의 창작은 모두 그가 정계에서 떠나 경원의 유배기간 또는 고향인 해남의 금쇄동 혹은 보길도의 부용동 등 산수 속에 묻혀 깨끗이 살아가던 기간에 이루어 졌다.